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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3 16:08
아저씨들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49  

아저씨들은 왜 개를 좋아하지?

 

   술자리에서 한 여자 선배가 물었다. “아저씨들은 왜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말복도 지난 마당에 웬 보신탕 타령인가 싶었는데 그 얘기가 아니었다. “아는 언니에게 들은 말인데, 그 집 강아지가 샤워하러 들어간 아저씨 안경을 부러뜨렸대. 아저씨가 처음에는 누구 짓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니 강아지가 그랬다니까 갑자기 개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 네가 그랬어?’라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라는 거야.”

   사연을 들으며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집에서 키우는 푸들이 워낙 장난이 심해 녀석이 해먹은 내 안경이 벌써 두 개째다. 둘 다 꽤 비싼 안경이었는데 하나는 아예 반 토막을 냈고 또 하나는 귀걸이 부분을 다 갉아버렸다. 그랬는데도 나 역시 선배 언니의 아저씨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말귀 못 알아듣는 동물에게 화내고 훈계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체념과 벌써 꼬랑지 내리고 슬슬 뒤로 내빼는 강아지의 우스운 행동이 내 관대함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아빠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고함은 기본이라는 것을 잘 아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의 너그러움을 기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들어왔을 때, 트위터로 소식을 접한 모 신문사의 아저씨 기자는 “앞으로 퇴근 시간이 빨라지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맨션을 남겼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가 했으나, 주변에 강아지를 입양한 중년 남성들이 마치 늦둥이라도 본 양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기자의 선경지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신혼때 잠깐 자기 색시 보고 싶어 칼퇴근한 이후로 수십 년 만에 강아지나 고양이 때문에 집으로 조기 귀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강아지를 끌고 공원 산책을 나가면 나처럼 배 나오고 머리 흐끗한 중년 남성들이 한 손에는 개줄을, 한 손에는 배변 봉투를 들고 흡족한 표정으로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미에코 오사카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명품 만화는 ‘그녀와 그와 그의 개’라는 단편을 통해 개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를 절묘하게 그렸다. 계약에 의해 결혼한 커플에게 어느 날 남편이 좋아하는 개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오고, 개와 남편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 때문에 생기가 넘치는 남편과 이를 질투하는 아내를 묘사한 장면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주변 남자들의 개 사랑과 영화나 만화의 장면 그리고 내 경험담을 종합해보면, 개를 사랑하는 남성 심리는 흥미롭게도 ‘통제 욕구desire for control'라는 심리 용어에 닿아 있다. 통제 욕구는 말 그대로 살아가면서 주변과 사건을 자신이 장악하고 자기 조정의 범위 안에 두려는 욕구다. 물론 이 욕구는 남자에게도 있고 여자에게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 승객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기장에게 통제 권한을 위임한다. 기체가 흔들릴 때 특히 더 심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자기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을 향한 엄마들의 잔소리 역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아이를 향한 통제 욕구의 좌절감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통제 욕구의 좌절감을 가장 극심하게 경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년 남성들이다.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고 외치던 호기는 잊은 지 오래다. 그저 다니는 회사나 무사히 출근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다. 나만 잘하면 상대도 잘할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은 주변 인간들에게 몇 번 배신당한 이후에 접어버린 지 오래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것이라는 청년 시절의 꿈은 중년이 되면서 쓸쓸한 거실 풍경 한쪽으로 밀려나버렸다. 아내도, 아이들도 더 이상 아빠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도, 사람도, 가정도 모두 자기통제권 밖으로 사라졌음을 인정할 때 ‘개‘가 나타난 것이다.

 

   여자가 가슴으로 교감하는 걸 정서의 바탕으로 삼는다면, 남자는 힘으로 통제하는 걸 존재의 이유로 삼는다. 이는 진화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남녀의 어쩔 수 없는 차이다. 남자 100명에게 일등 신붓감을 물었을 때 저마다의 답은 다르겠지만 변치 않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말을 믿어주고 따라주는 여자가 최고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는 여성을 절대적으로 좋아한다. 자기 아이를 낳았을 때도 모성애에 비해 부성애는 뒤늦게 발동한다.

 

   대부분의 아빠는 갓 태어난 아이를 낯설어하고 어색해한다. 아빠가 아이에게 눈이 갈 때는 아이가 “아빠”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통제권 안에 들어올 때다. “이리 와”하면 이리 오고 “뽀뽀해” 하면 뽀뽀해주는 아이 앞에서 남자들은 단번에 무너진다. 그리고 중년 남성에게 유일하게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개나 고양이다. 특히 개는 절대적이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자신을 반기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와서 안기고,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앉으라면 앉고, “왼손”하면 왼손을 내미는 강아지는 남자의 자존심이던 통제 욕구를 유일하게 충족시키는 대상인 것이다. 술자리에서 여자 선배가 한 질문에 답할 차례다.

 

“중년 남성들은 왜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그 무렵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지시와 손길을 무조건 수용해주는 유일한 존재니까.”

 

그런데 다 쓰고 나서 든 생각. 왜 중년 남성과 관련된 글을 쓰면 늘 결론은 새드 엔딩인 것이냐? 흑.

 

<남편의 본심> 중에서...

남편의 서재에서 재미있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읽는 내내 공감의 고개를 끄덕에게 한 글이었거든요.

우리 병원 내원하는 보호자를 살펴보면 남성의 비중이 여성 못지 않게 많은데요,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분들이 대부분 이랍니다. 그런데요, 남성 보호자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여성의 그것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단하답니다.

그들이 반려동물을 이뻐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거 였습니다. 쏟는 사랑에 버금가는 충성도에 늘 감동을 받는다네요. 은퇴하신 한 어르신의 경우는 반려동물이 하늘나라로 떠나자 우울증에 걸려 꽤 병원치료를 받았답니다. 혹시 잘몫되는 것은 아닐까 아내 분이 깊은 걱정을 할 만큼 상실감이 컸다고 하네요.

지난 주에도 내원하셨던 79세의 어르신은 10년 전 아내가 떠나던 해에 입양했던 강아지 소피가 지병으로 죽게 되자, 깊은 슬픔에 빠져서는 아이의 귀에 대고 "소피야. 가서 할머니 만나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곧 갈께." 하며 우셨답니다. 소피를 아내가 환생한 것으로 알고 애지중지하셨는데, 잃게 되었으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결국 아저씨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한 이유는 '외로워서' 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것은 어쩌면 혼자가 아닌 여럿 속에서의 외로움일 겁니다. 나는 혹시 내 가족을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아울러 외로움을 달래줄 반려동물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도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반려동물"이 아닐까요? ^^